삼해소주 [三亥燒酒]

<삼해주란>

삼해주는 음력 정월 첫 돼지일(亥日) 해시(亥時)에 첫술을 담근 뒤, 돌아오는 돼지일(12일에서 36일 주기)마다 

세 번 덧술을 쳐 저온에서 발효시키는 시양주(時釀酒) 입니다. 

조선시대의 사대부 사이에서 널리 음용되던 서울의 대표적인 소주 입니다.

<삼해주의 특징> 

삼해주의 주 재료는 맵쌀과 찹쌀, 누룩, 물이고, 맑은 약주를 만든 뒤 숙성시켜서 증류하면, 

약주 투입 양의 30% 정도만 얻을 수 있는 고급 소주가 되는데, 이것이 바로 삼해소주입니다. 

삼해소주는 장기 저온발효, 숙성 과정을 통한 약주로 증류하기 때문에 풍미가 부드럽고, 뒷맛의 여운이 길며 첨가물이 일체들어가지 않아서 숙취가 전혀 없습니다. 


<문헌에서의 삼해주> 

영조 9년(1733) 

형조판서 김동필(金東弼)이 "서울로 들어오는 쌀이 삼해주 만드는 데로 쏠려 들어가니 미곡정책상 이를 금함이 옳다"고 진언한 기록으로 보아서도 조선시대 널리 제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서울에서는 일반인들의 삼해주 수요가 많아지자 정월에 빚어야 하는 계절적인 제한으로 그 수효가 한정되자 마포 공덕(孔德) 옹막이(甕幕)를 삼해주의 대량 제조공장으로 사용하였다 한다. 그 이유는 겨울에는 옹기를 굽지 않은 가마를 이용하여 음력 정월에 대량의 삼해주를 빚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중엽 이후에는 소주의 술덧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정조 18년(1794) 

"술이란 물건은 금지하기가 매우 어렵다. 더구나 지금 기강이 무너지고 풍속이 퇴폐하였으니 비록 금령을 설치한다 하더라도 어찌 어리석은 백성들이 조정의 명령을 금석처럼 믿으리라고 보장할 수 있겠는가. 또 더구나 삼해주(三亥酒)가 이미 다 익었으니 이제 와서 이미 다 빚어놓은 술을 공연히 버리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는 바로 백성을 위하여 흉년을 구제하려는 뜻을 담고 있었다.


삼해주는 조선 시대 술의 대명사라 할 수 있어고, 20세기 초반까지 서울 마포에서 수백 수천 독을 빚어냈다고 하는 유일하게 상업화가 되었던 술, 

오랜 역사를 머금은 채 살아 숨쉬는 서울의 술 입니다

전통식품 [삼해소주]의 김택상 명인

김택상 명인은 

2016년 농림축산식품부가 선정하는 전통식품명인 제 69호로 지정 되었으며 

2018년에는 그의 어머니인 이동복 여사 (1993년 무형문화재,삼해주 제조)의 뒤를 이어 삼해소주 무형문화제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